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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마지막 달동네에서 문화공간으로,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서 문화공간으로

서울 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출처: 네이버 지도)


서울 "상계동"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지금의 상계동'과 '과거의 상계동'이 전혀 다른 풍광을 자아내지는 않으신가요? 오늘은 서울 마지막 달동네에서 문화의 거리로 변모한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울에서 제일 높은 동네


서울 동북부 변두리에 자리한 상계동은 1970년대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일명 '달동네'였습니다. 1965년부터 68년까지 철거민 정착지로 마을이 조성된 상계동에는 산비탈 길을 걸어 오르면 길가 양쪽으로 낮은 지붕들이 포개지듯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습니. 주민의 60% 이상이 단순노동이나 영세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한 대표적인 달동네였죠.


 


<서울 판자촌 모습>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계동 판자촌 철거, 변화의 물결 속으로


상계동은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 개최로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도시 정비를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상계동의 판자촌이 강제 철거되고 지금의 아파트촌이 들어서게 됩니다.


  

(좌) <1987년 서울 상계역 부근 거리>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우) <1987년 서울 상계동 건설 현장>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재개발 사업 추진으로 판자촌 집단 철거는 주민들의 저항과 시위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대 없어진 상계동 주민들은 2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항의하였지만 결국 판자촌은 철거되면서 상계동 판자촌은 아파트와 새로운 건물을 맞이하게 되었죠.



  

<1987년 상계동 철거민 시위>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계동에서 하계동에 이르기까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중계동에는 학원가가 밀집하면서 현재는 교육 열기가 뜨거워진 교육 특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주민들에게 '문화 쉼터' 를 제공하며 상계동 일대는 문화·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주거 환경으로 변모했습니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출처: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과거 달동네였던 상계동이 오늘날 높은 교육열과 문화공간을 자랑하는 곳으로 변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요, 지금은 달동네의 풍광은 사라져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남아있는 기성세대들은 그 때 그 달동네를 추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