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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둘레길에서 만난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둘레길에서 만난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처음 뵙겠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 기자단 2기로 활동하게 된 손진슬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북한산 둘레길 2코스를 다녀왔는데요, 북한산 둘레길 2스는 순례길4.19민주묘지와 큰 업적을 남긴 분들의 묘소를 만나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둘레길을 걷던 중 김병로선생묘역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 선생의 짧은 소개글을 읽은 뒤 그 분의 업적과 일생, 성품이 궁금하여 조사해보았습니다.

 


의병 김병로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 (1887. 12. 151964. 1. 13) (출처: 국가보훈처)



김병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 선생을 좇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최익현의 부대가 해산되고 나서도 다른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일본 관청을 습격하기도 했는데요, 일제의 ‘호남대토벌작전’ 때문에 의병활동을 지속하지 못했지만, 이후 자강운동에 힘썼습니다.

 

 

변호사 김병로

선생은 1910년 일본으로 떠나 법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습니다. 1920, 변호사로 개업한 뒤 독립투사들 변호하고 광주항일학생운동 사건, 6·10만세운동 사건 등 일제에 항거한 우리민족을 위해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변호했습니다. 또한, 동료변호사들과 함께 독립투사들의 무료변론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을 돕는 일까지 했습니다.

 

 

해방 이후의 김병로

해방 이후 김병로 선생은 한국민주당(한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건국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46년 미군정기에는 미군정청 사법부장, 사법부 내 6인헌법기초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사법제도의 기초를 닦았는데요, 이런 김병로 선생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첫 수장이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48 8 5, 그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되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독재와 맞서 싸우는 김병로

1957 12월 대법원장에서 퇴직하고 재야법조인이 되어서도 선생은 정부의 잘못된 행동에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하자

 

"절차를 밟아 개정된 법률이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면 국민은 입법부의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습니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정선거는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경고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인 김병로 선생은 평생을 청렴하고 강직하게 살았고, 독립운동과 정의와 자유를 위해 힘쓰신 인물입니다당시 법조인이 되는 것이 쉽지도 않았지만 식민지의 고위 공무원이라는 자리에서 민족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힘썼고, 재임기간 동안 원칙과 소신을 지킨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그의 독립운동 의지와 독재를 규탄하는 용기, 강직하고 청렴한 그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알고 배우려고 애써야 하겠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