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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어머니의 이름에서 독립운동가로 '곽낙원' 여사

어머니의 이름에서 독립운동가로

곽낙원여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교과서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외에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셨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제 머리 속에 남아있는 이름 곽낙원

 

처음 그분의 초상화를 볼 때에는 그저 낙원이라는 이름에 낙원떡집을 떠올리며(ㅎㅎ) 사진을 다시 쳐다본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기억된 곽낙원 여사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곽낙원 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아내, 딸들의 이야기가 묻혀져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국의 아들을 길러낸 어머니, 곽낙원

 

독립운동가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 백범 김구선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로 그의 어머니가 곽낙원 여사랍니다.

 

광복 이전 역사적 인물로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김구 선생인데, 그의 어머니이자 그의 뒤에서 묵묵히 조국을 위해 독립 운동을 함께했던 그녀를 아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1992년 건국훈장을 추서 받을 정도로 조국 독립에 기여한 그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아들, 김구 선생을 통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곽낙원 여사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데요, 곽낙원 여사는 찬거리를 줄여 그 돈을 모아 군자금으로 전달하고, 독립활동을 위한 숙식제공 및 활동 뒷바라지를 하는 등 임시정부의 조력자로 활동 하였습니다.

 

14세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한 명, 그 아들이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독립 운동을 하는 아들로 인해 가슴을 수백 번 조이고 풀었을까 싶은데, 어쩌면 그는 나라의 김구보다 더 큰 가슴과 피를 지녔던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곽낙원 여사의 동상은 백범 김구 선생의 행적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인천대공원 백범광장,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등에서 곽낙원 여사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 있는 곽낙원 여사 동상은 바가지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백범이 인천감리서에 수감되었을 때 곽 여사가 여기저기 구걸을 하면서 그의 옥바라지를 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생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1939 4 26, 80세로 생을 마감한 곽 여사. 그녀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 있는 곽낙원 여사 동상 (출처: 허경숙)▶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