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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주 제중원에서 환자와 고아를 위해 헌신한 미국인 의사, 우일선

광주 제중원에서 환자와 고아를 위해 헌신한 미국인 의사,

우일선

 

  

 

 우일선. 얼핏 들어서는 한국 사람처럼 들리는데요, 그는 광주 제중원장을 지낸 미국인 의사입니다. 제중원은 광주에서 최초로 현대식 의료를 시작한 병원이죠. 근대식 병원보다 한 차원 높은 의료 시스템으로 당시 광주 시민들의 병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우일선은 당시 선교를 목적으로 광주에 온 선교사이자 의사로, 그의 본명은 윌슨(Robert M. Wilson)이지만 한국식 발음으로 “일선”이라 불렸습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광주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5호)

 

 광주 남구 양림동에 가면 지금도 당시 광주를 찾은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윌슨, 우일선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우일선 선교사 사택’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택은 우일선이 1920년에 지은 벽돌집으로,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광주 양림동 근현대사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기도 하죠. 현재는 학생들의 기도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 관람을 목적으로는 출입 할 수 없습니다.

 

                                            

 

 양림동은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선교를 위해 광주에 왔을 때, 그들은 양림동에 터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옛날 양림동은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광주에서도 버림받은 땅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설교사들은 이곳에 학교를 짓고 병원,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일선은 의사로서 이곳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도 품에 안으며 박해가 심할수록 더 헌신적으로 약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제중원장이 되어 광주 곳곳에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병을 치료해주었습니다. 특히 한센병 환자를 극진히 보살폈는데, 1912년엔 광주한센병원을 열고 나중엔 여수 애양원을 세웠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우일선 의사는 끝까지 광주에 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의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과 의료 활동은 광주의 근대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고난의 길

 

▲선교사 묘원

 

그는 모든 이에게 조건 없는 박애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대나무로 의족한 소년이 눈에 밟혀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우일선 의사가 했던 말이지요. 우일선 의사는 고아의 아버지였으며, 나병환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지금의 여수 애양원을 이룬 사랑의 실천가입니다.

 

한걸음기자단 2기 이기동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