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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아마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 대사인데요, 오늘 제가 이야기 할 인물은 소설, 영화,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 등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명성황후입니다.

 

혼란스러운 조선 말, 그곳에 있었다

187623일 조일수호조규가 체결 되었습니다. 강화도조약또는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하는데요, 당시 국제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조선 정부가 협정 관세나 일본인 치외법권과 같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불평등조약이었습니다. 1882년에는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이어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등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들 모두 불평등한 조항을 담고 있었죠. 이렇게 조선은 열강들에게 떠밀려 국제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변화에 노출되었습니다.

 

개항 후 조선은 내부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본의 후원 하에 신식 군대, 별기군이 설치되면서 구식 군대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습니다. 차별대우, 봉급미 연체와 불량미 지급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여 격분한 구식 군인들은 병란(임오군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후에도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 조선은 빠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차별을 받았던 구식 군인들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 부인의 천거로 왕비로 간택되어 1866년에 한 살 아래인 고종과 가례를 올리고 입궁하였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군대의 출동으로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을 몰아내어 민씨 정권을 재수립 하였습니다. 그러나 1894년 일본 세력을 등에 업은 흥선대원군이 재등장하자 이번에는 러시아에 접근하여 일본세력을 추방하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명성황후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알렌은 명성황후를 개성이 강한 분이었으며, 아시아의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분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마지막, 건청궁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1895820, 명성황후가 지내는 건청궁 옥호루에 흉도들이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잔학한 사건이 벌어졌죠. 이로써 명성황후는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뒤 그녀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고종에 의해 복호되었고, 1897(광무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명성' 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그 해 11월 국장으로 장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 전청궁 (출처: 한국문화재단)

 

다양한 작품 속 명성황후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갈등 때문일까요. 명성황후는 다양한 작품에서 다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KBS 드라마 <명성황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 <명성황후>와 이 뮤지컬 극본의 바탕이 된 이문열의 <여우사냥>도 명성황후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드라마<명성황후> (출처: KBS)

 

여러분은 명성황후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사람마다 많은 평가가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중요한건 역사를 잊지 않고, 반면교사(反面敎師)하여 우리가 배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