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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국채보상운동의 의미: 나라를 위한 국민의 마음을 확인하다

국채보상운동의 의미

나라를 위한 국민의 마음을 확인하다

 

대구의 번화가로 불리는 중구 동성로와 중앙로. 대구를 대표하는 곳으로 대구 사람들은 흔히 시내로 불리는 곳입니다. 놀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모두 이곳 중앙로와 동성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2.28기념중앙공원과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가볍게 산책을 즐길 때 사랑받는 휴식의 공간입니다. 2 .28 기념 중앙공원은 학생민주의거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으로 2003년 조성되었습니다. 대구의 상징이자 심장이라 불리는 공원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입니다. 공원 안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보면 구한 말에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2월 일본의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주권수호운동으로 대구에서 발단된 운동입니다. 일본은 한국의 경제를 무너뜨리고자 한국 정부에게 대량의 차관을 도입하게 합니다. 이 차관으로 한국에 일본인들을 위한 건물을 짓게 되지요. 차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300만 원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 한국 정부로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돈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입에서 입으로, 기생들 또한 앞장서서 나섰다.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자 나라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 국권 회복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72월에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하고 이날 모인 참석자는 그의 주장에 전원 찬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국채보상취지서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들은 국채 1,300만 원을 갚기 위한 국민운동을 추진하게 됩니다. 전국을 뛰어다니며 국민에게 나라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의 뜻을 전했습니다. 각종 신문도 그들을 후원하였지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곳을 지도에 표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전국으로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모이니 그 힘은 무서웠습니다. 5월까지의 보상금은 230만 원 정도가 되었지요. 100일도 안 되는 시점에서 큰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본의 집중적인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관련자들을 연행하고 각종 누명으로 지속적인 방해를 하였지요. 국채보상운동은 더 이상의 진전 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1997IMF 당시에도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큰 힘을 모은 적이 있었지요.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듯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돌면서 다시 한 번 애국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걸음기자단 3조 이기동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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