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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140년전의 FTA, 무엇이 문제였을까?

140년전의 FTA,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려 140년 전 조선에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가 시작되었습니다. 1876년 고종 13 2,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 조약에 우리는 불평등이라는 수식을 암기하듯 달아 놓습니다. 당시 조일수호조규, 병자수호조약이라는 정식 명칭의 이 조약을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출처: 한국민속문화대백과)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사신들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명명 아래 조일수호조규를 맺고 우리는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우리나라는 부산, 원산, 인천의 3개의 항을 개항하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근대화의 시발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에 식민주의적 침략의 발판이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 연해를 자유롭게 측정하였고 치외법권허용, 조계지의 설정 및 화폐유통, ,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허용 등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문화개방에 근대화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조약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왜 불평등조약이라 부르는 걸까요?

 

 

(출처: 한국민속문화대백과)

 

1관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 일본국과 동등한 권리를 보유한다로 시작하여 12관까지의 조항을 여러 번 읽어보면 조약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불평등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그 당시 조선은 FTA를 실행하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일본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 생각한 조약이었습니다.

우리는 1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조약을 불평등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역사상 불평등조약이라는 것이 한국사에 문장 속에 잊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기억하고자 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