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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전명운과 장인환, 매국노 스티븐스를 저격하다

전명운과 장인환, 매국노 스티븐스를 저격하다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나요? 많은 분들이 오래 전의 일,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100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만, 우리가 잊어서 안 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정명운 선생(좌) 장인환 선생(우)의 모습 (출처: 국가보훈처)


전명운 선생, "미국에서 학업을 닦아, 조국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884년 6월 25일, 독립운동가 전명운 선생이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민하고 용감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정명운 선생은 대한제국의 주권 수호와 근대적 민권 확대를 위해 신학문 수용의 필용성을 절감하고 조국의 자주화와 근대화에 기여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전명운 선생은 1905년 안창호 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항일 민족운동 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청년회에서 주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면서 강력한 국권회복운동을 주장하였습니다.


장인환 선생 (출처: 국가보훈처)


장인환 선생, 안중근과 윤봉길 의거에 영향을 미치다


1876년 3월, 평양에서 태어난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 운동가가 있습니다. 바로 '장인환' 선생 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가난한 삶 때문에 학업을 일찍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청일전쟁을 체험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세가 약함을 깨닭고, 기울어져가는 국가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장인환 선생은 1906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독립 운동을 펼쳤습니다.


스티븐스 저격사건 장소,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출처: 국가보훈처)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 스티븐스, 저격당하다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가 넘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정거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펴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제 침략의 실상과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의열투쟁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정명운 선생과 장인환 선생, 두 명의 의사가 한국정부의 '외교 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활동했던 일본의 하수인,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것입니다. 

맨 처음, 스티븐스가 페리 정거장에 도착한 순간 정명운 선생이 권총으로 저격했지만, 불발하고 말았습니다. 스티븐스는 바로 정명운 선생을 뒤쫓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스티븐스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인환 선생이 세 번의 방아쇠를 당기며 스티븐스를 총살 응징했습니다.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틀 뒤 사망하며 그의 악랄한 친일행각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정명운 선생과 장인환 선생은 12월 미국 법정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전명운 선생은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장인환 선생은 종신형에서 징역 2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스티븐스 사살 사건은 국내외로 미친 영향이 컸습니다. 국내의 한민족의 애국혼을 각성시켜 보다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항일민족운동 추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한인사회에서는 모든 해외한인사회의 결속과 조국독립운동을 추진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명운 선생과 장인환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으며, 의거 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생애를 보냈습니다.

광복 70년인 올해,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가이며, 이 분들의 항일투쟁이 다른 독립운동가의 의혈투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