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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우리 민족운동의 산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우리 민족운동의 산실천도교 중앙대교당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의 곳곳에는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근현대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무궁무진한 근현대사의 일화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곳은 인사동 인근에 위치한 천도교 중앙대교당입니다.

 

                                                

                                                ▲3.1운동의 유산인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출처: 천도교중앙총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 운현궁 맞은편에 우리나라 근대사를 대표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천도교 중앙대교당인데요, 서울 도심에 위치한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18 12월 착공해 1921 2월 완공한 천도교의 총본산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깊지만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우리 민족의 만세 운동을 이끄는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천도교 제3대 교주 손병희(1861—1922)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천도교 중앙대교당의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짓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천도교인들에게 모금을 시작했고, 당시 100만 원이 넘는 큰 금액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대지 구입비와 건축비로 36만 원을 사용하고 남은 돈은 모두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천도교가 없었다면 중앙대교당이 없고, 중앙대교당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없고, 상해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도 없었을 것이외다." -김구-

 

해방이 되어 귀국한 김구 선생은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찾아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었던 천도교 교단에 감사를 전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처럼 천도교 중앙 대교당은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해왔습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 1923 5 1, 손병희의 사위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중심이 되어 당시 억압받던 시대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어린이들을 보호하고자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아동 인권 선언보다 30년이나 앞선 한국 어린이 인권 선언이었죠. 역사적인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 길가에는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10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지금도 위용이 여전합니다. 조선총독부 건물보다 규모가 큰 교당을 짓지 못하게 하려는 일제의 방해 때문에 원래 계획이었던 건평 400평 규모의 대교당을 짓지는 못했지만 완공 당시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서울의 3대 건축물로 꼽혔습니다. 바로크 풍의 탑, 민족정신을 담은 박달나무 꽃과 무궁화 조각 등이 아름다운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78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