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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3·15의거

 

 

 

56 오늘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함성이 마산 시내를 가득 메웠습니다.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던 시민들의 뜻을 기리고 3·15의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사람들은 동원하여 자유당에 투표하도록 하게 [출처:3·15의거기념사업회]

 

 

초대부터 3대까지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사사오입개헌, 야당 당수인 조봉암 사형 집행, 야당 성향의 경향신문 폐간 , 집권 연장을 위한 연이은 무리수로 민심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부정 개표, 유권자 협박 부정으로 얼룩진 1960 3 15 ·부통령선거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시켰습니다.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 [출처:3·15의거기념사업회]

 

 

이에 참지 못한 대구의 학생들이 1960 2 28 처음으로 시위를 일으켰고

1960 3 15 야당이었던 민주당 마산시지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하며 4 대통령 선거는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같은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민주당 당사에서 시작해 부정선거 개표를 막기 위해 마산시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역사적인 3·15의거가 일어난 것입니다.

 

 

연행되는 학생 [출처:3·15의거기념사업회]

 

경찰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습니다.

이날 시위를 통해 마산의 학생 10여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마산의 시민들을 굴복하지 않고 크게 소리쳐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발견당시 김주열 열사 [출처:3·15의거기념사업회]

 

 

 

3 15 의거가 발생한지 27 마산 중앙부두에서는 믿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3 15 의거 경찰의 최루탄에 눈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주열, 당시 마산상고 학생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의 발견으로 분개한 시민들의 2차 항거[출처:3·15의거기념사업회]

 

 

 

김주열의 시신을 마산시민들은 분개했고 4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이어진 2 의거는 4·19혁명으로 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결국 1960 4 19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성명을 발표했고, 마침내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이승만의 독재 정권을 막을 있었습니다.

                                                                

따뜻했지만 가슴 아팠던 1960년의

부정선거에 맞서 총탄과 유혈사태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용기는 씨앗이 되어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꽃피울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기억해보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