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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한국을 빛낸 과학자 - 이태규 박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블로그 지기입니다!

날씨가 너무 덥고 미세먼지때문에 정말로 예민한 4월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날씨를 위로할만한 좋은 소식이 있는데요!

 

[기념우표 출처: 우정사업본부] 

 

부산 우정청은 4 과학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에 지대한 업적과 발자취를 남긴 과학자를 기리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알릴 있도록 한국을 빛낸 과학자 3, 장영실, 허준, 이태규 박사의 기념우표

3종을 발행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인물은 기념우표중의 분인 이론화학자 이태규 박사입니다.




예리한 관찰과 끊임없는 노력

 

세계적인 이론화학자 이지만 장영실과 허준 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보석!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난 이태규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영재라는 소리를 귀에 닳도록

듣고 살았습니다.

한학자였던 아버지 이용균에 의해 또래보다 학교에 일찍 들어가 월반을 거듭했고, 결과 4년만에 경성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도지사의 추천으로 당시 최고 명문인 경성보고에 입학했습니다.

 

[ 교토대학교 전경 출처 : 교토대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이태규 박사는 경성보고에서 만난 화학 선생, 호리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세계적인 화학자의 꿈을 키웠고, 꿈을 향해 밤낮없이 공부한 끝에 교토대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할 있었습니다. 조선인으로서 많은 차별이 있었던 일제강점기 시절 이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본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있었습니다. 조교수에 임명되어 우리나라 아니라 일본에서도 화제를 낳았습니다.

 

 

 

[헨리 아이링 박사 출처 : Fold3]



이후 이태규 박사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유학길을 떠났습니다.

이태규 박사는 이곳에서 헨리 아이링 박사(Henry Eyring, 1901~1981) 만나 함께 연구하며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논문이 바로 화학분야에 양자역학을 도입한 최초의 -아이링 이론(Ree-Eying Theory)입니다.

 

화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화학계의 터를 다지며 희생했던 이태규 박사.

 

이러한 지대한 업적을 남기며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이태규 박사는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과학자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미국시민권도 포기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고수했던 이태규 박사는 1973 귀국하여 한국과학원 석좌교수에 취임하여 후학 양성과 연구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2 별세 과학자로서는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유품전시관엔 예리한 관찰과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글귀가 적인 액자를 있는데요. 우리나라 화학계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이태규 박사의 신조를 살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