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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발걸음, 6.10 민주항쟁


6, 서서히 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것 같은데요,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6월은 1987년의 6월이 아닐까 합니다. 1987, 그해 6월에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6.10민주항쟁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던 그 뜨거운 투쟁의 기록을 한 번 되짚어볼까 합니다.

 

 

전두환 집권과 5.18 민주화운동


19791212, 군부세력을 대동한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기를 틈타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80518,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대중들 사이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이 점차 커지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외쳤던 19876>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몇 년이 지난 19871, 한 청년의 죽음이 일간지에 실립니다. 청년의 이름은 박종철. 그의 나이, 고작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청년의 사인을 쇼크사로 검찰에 보고했지만, 검찰 측은 청년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있던 가혹행위로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자체적으로 수사를 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100자도 되지 않는 짧은 기사는 군사독재정권을 향한 반발심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1987년 당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관련 추모집회>

 

 

박종철 군은 당시 ‘대학문화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같은 대학문화연구회 소속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되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박종철 군을 연행했고, 이 취조 과정에서 박종철 군에게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의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114일 박종철 군은 끝내 사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같은 해 518,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공식성명을 통해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이 조작 ·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됩니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527일 결성되면서 민주세력이 결집하게 되고, 국민운동본부는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 날에 맞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로 합니다.

 

경찰 최루탄에 의한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그리고 610일 집회 하루 전인 69, 각 대학의 학생들은 교정에서 사전 집회를 열게 됩니다. 사전집회가 끝나고, 그대로 교외로 진출하려던 학생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는데, 규정을 무시하고 직사로 사격한 최루탄이 이한열 학생의 머리에 직격하게 됩니다. 이한열 군은 결국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고(이후 75일 사망), 이에 예비역 출신을 비롯해 시위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까지 모두 항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

 

 

민주화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그해 6


610, 잠실체육관에서는 노태우가 민주정의당의 제 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됩니다. 한편, 국민운동본부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살인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들은 명동성당을 점거하고 끊임없이 시위를 이어나갔고, 故 김수환 추기경이 이를 도왔습니다. 이 일을 기점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어, 전국 37개 도시에서 항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민중의 참여는 점점 더 진행되어 최초에 참여했던 시위대 숫자의 3배가 넘는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국민평화대행진에 참여했습니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이 때 참여한 시민의 숫자를 약 100만 명으로 추산했는데, 회사원들의 시위 참여로 인해 6월 항쟁은 학생 항쟁에서 시민 항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미국 측에서는 군사조치를 자제하라는 압력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

 

 

결국 629, 노태우 후보의 6.29 선언을 통해 4.13 호헌조치를 철회,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고 직선제 개헌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또한 헌법을 바탕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악법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기관인 헌법재판소도 이 때 탄생하게 됩니다. 마침내 대한민국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행동했다는 점, 이름 없는 시민들이 직접 힘을 모아 이룩했다는 점 등이 6.10 민주 항쟁이 가진 진정한 의의가 아닐까 합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이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민중들의 발자취를 한 번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