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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그 뜨거운 여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노근리 학살사건'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다가 대전 부근의 논밭을 지나면  트인 넓은 공원이 나타납니다. 차창 너머로 현대식 건물이 여럿  있고, 몇몇 조각상과 독특하게 생긴 탑도 보입니다. 바로 충북 영동읍의 노근리 평화공원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워 보이는 노근리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진1 노근리평화공원위령탑 공유마당)


 

사건은 1950 625 전쟁이 발발한지 만인 7 23일에 발발하였습니다. 전쟁 소식을 들은 , 영동읍 임계리 인근 주민들은 미군의 유도로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오륙 명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전쟁의 불길을 피해 움직였습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피난민들은 4 국도를 타고 이동하다가 또다시 미군의 유도로 행로를 경부선 철로로 바꿉니다.


 



(사진2 노근리 사건 경위 노근리평화공원)



그때였습니다. 천지를 찢는 굉음. 콰과과광-. 피난민들에게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철로 위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고, 많은 피난민이 죽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나머지 사람들은 철로 아래에 있는 쌍굴다리로 피신했습니다. 미군들은 쌍굴다리로 피신한 피난민들을 포위하고는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총격은 4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가족을 뒤로하고 간신히 탈출한 몇몇을 제외하고, 수백 명이 피난민들이 노근리 쌍굴다리 아래에서 무참히 죽어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노근리 학살사건은 유족들의 요구와 일부 사회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습니다. 뜨거운 여름은 절대로 잊을 없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99, 미국 AP통신이 노근리 사건에 대해 보도를 했습니다. 미군이 노근리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로 인해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말입니다. 노근리가 세계의 주목을 받자 한국과 미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언론을 통해 노근리 학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것이죠. 이후 사회적으로도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나 시사프로그램이 제작되었고, 책도 출간되었습니다.

한미 양국 공동조사단은 양국 공동 발표를 통해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공식 조사는 2001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후에도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유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노근리 쌍굴다리 인근에는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노근리 평화공원 기념관에는 노근리 사건과 한국전쟁에 대한 참상을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고, 야외에는 당시 피난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공원과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는 위령탑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근리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노근리 쌍굴다리에는 총격의 자국마다 하얀 표식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대로 노근리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자, 앞으로 다른 노근리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새기는 공간인 것입니다.




지금도 노근리 쌍굴다리 위에는 하루에도 수십 기차가 지나갑니다. 그러나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스쳐간 다리 밑에는 하얗게 아로새겨진 총격의 흔적과, 전쟁의 참상 속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한이 지금도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