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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영화 <밀정>으로 보는 의열단


지난 9 7 개봉해 아직까지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밀정> 보셨나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어도 의열단이라는 이름은 한번 들어보였을 같은데요.

과연 의열단 어떤 조직이었는지,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아볼까요?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은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구상하게 되는데요!

하나인 민족의 직접적인 혁명의 필요성과 폭력 등으로써만이 독립을 쟁취할 있다는 무장투쟁론 주장했던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의열단이었습니다.

과거 의열투쟁은 개인별로도 많이 진행했지만 의열투쟁의 양대 산맥은 바로 백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이라 있습니다.



 

[약산 김원봉]

 

 

1919 11 9 무력 투쟁의 필요성을 느낀 독립 운동가들은 만주 지린성에서 새로운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이름을 의열단으로 하였습니다. 의열단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김원봉을 단장으로 5개소(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기타 중요 기관) 기관 파괴와 7(총독부 고문, 수뇌, 타이완 총독, 친일파 거물, 밀정, 반민족적 토호, 열신(劣紳)) 제거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출처: 국가보훈처, 의열단 단원들]

 

의열단은 일제로부터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사람이 여러 가지 가명을 사용하였으며,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 살아있는 자유롭게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머리를 손질하였으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사진을 촬영할 때는 언제나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이번이 마지막 사진이라고 생각하면서 찍었다고 합니다. 의열단의 수많은 의거 활동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 그리고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가 의열단의 대표적인 의거라 있습니다.

특히 종로 경찰서는 많은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일제의 컨트롤 타워였지만 그곳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적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습니다.

 

거사의 성공 실패에 상관없이 거사에 나선 단원들은 대부분 희생당했기에 이에 개별적인 의열투쟁의 한계를 느낀 김원봉은 의열단을 해산하고 조선의용대를 결성하기에 이릅니다. 의열단 해체 후에도 단원들은 개별적인 의열투쟁을 계속 벌이거나 김원봉과 같이 조선의용대로 무장투쟁으로 이어나갔고, 조선의용대는 대한광복군과 통합 조국의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의열투쟁 특성상 한번 나서면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원들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길을 선택하였죠. 영화 <밀정>으로 의열단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요즘, 이후에도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많은 의사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