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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오는 10 10일은 이봉창 의사 순국 84주기입니다.

학창시절, 근현대사를 배울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우리의 이봉창 의사!

하지만 이봉창의사의 인생과 그의 의거를 자세하게 기억하시는 분은 많지 않으실 같은데요!

그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우리함께 알아볼까요?

 

1901 서울 용산구에서 효령대군 후손인 이진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봉창 의사는 어려서부터 일본인이 경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학대를 받아야만했고 만주의 철도회사에서는 일본인 직원들로부터 '조센징'이라는 굴욕과 수모를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받은 설움이 모두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여기고 항일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국을 되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힘쓰기 시작합니다.

 

이봉창 의사는 기노시타 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고 일본인 양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임시정부 직원들의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김구 선생은 그의 애국정신을 감명을 받아 여러 비밀 면담 독립을 위한 일본천황폭살계획을 추진하게 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31 12 13 이봉창 의사는 김구 선생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의 집으로 찾아가 태극기 앞에서 손에 수류탄을 채로 선서하였습니다.

 

나는 적성(赤誠)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그를 바라보는 김구는 비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봉창 의사는 여전히 하얀 웃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영위하려 가는 것이니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봉창 의사는 12 17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2 1 8 도쿄 요요기 연병장 관병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히로히토를 명중시키지는 못하였고, 선생은 자리에서 체포가 되었지만, 체포가 되는 와중에서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의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일본 수도인 도쿄에서 일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져 죽이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 운동의 강인성과 한국인의 지속적인 저항을 세계에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10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10 10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광복 귀국한 김구 선생은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하였습니다.

 

10 10, 바로 이봉창 의사가 순국한 . 우리는 그가 나라를 위해 싸웠던 위대한 애국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