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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근현대사기념관을 통해 살펴 본 선열들이 꿈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의 나라




지난 5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한국 근현대사를 정리한 기념관이 새로 개관했습니다. 바로 근현대사기념관인데요, 동학농민운동부터 4.19혁명까지의 내용을 A <짓밟힌 산하, 일어선 민초들>, B <시대의 마감, 민주의 마중>, C <우리가 사는 나라, 민주공화국> 3개의 파트로 나눠 전시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우리 헌법의 정신 요체인 평등, 자유, 민주라는 세가지 중요한 가치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확실한 신분사회였습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에 인간은 다 평등하고 귀천이 없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다라는 이념을 앞세운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자생적으로 생겨났습니다.

기존 조선 양반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 사회 혼란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보존하여 국민을 편안하게 잘살게 하자)’, ‘제폭구민(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함)’을 기치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학 교도들의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청군과 일본군이 개입하며 동학 농민군은 수세에 몰린 가운데 지도자 전봉준이 체포되며 막을 내리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에 기초를 둔 농민 중심의 민중항쟁으로 신분제의 타파, 외세에 대한 저항을 통해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을 처음으로 표방한 근현대적 개혁 운동이었으며 이러한 동학농민운동의 사상과 이념은 3.1운동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내정을 간섭하며 끝내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이후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 등을 강제로 체결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에 국권을 지키기 위해 신분을 뛰어넘어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나 일본군에 대항하는 의병전쟁이 시작됩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의병항쟁은 우세한 화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 군대의 잔학한 남한 폭도 대 토벌 작전으로 그 활동무대를 만주지방 등지로 옮겨 항일무장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식인들은 무력을 통한 항쟁보다는 국학 운동, 신교육 구국운동, 언론계몽운동, 실업구국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신문학운동, 민족종교운동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며 국제정세의 변동을 기회로 하여 애국계몽운동가들이 양성하고 축적한 후학들은 실력을 폭발시켜 3.1독립운동을 일으키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동학농민운동, 의병전쟁, 3.1운동, 독립전쟁으로 이어지며 쌓여

온 자주 독립 평등한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분단과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집권을 꾀하였습니다.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헌법을 개정하고, 부정선거를 자행하며 독재권력을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앞장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과거청산, 서민경제회복, 평화 통일 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4∙19혁명으로 분출 되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 진압에 나섰지만, 전국민적 저항과 군 지휘부의 무력 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인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은 동학농민운동을 시작으로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 3.1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4.19 민주혁명으로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들이 꿈꾼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희생하였습니다.

그들의 뜻을 이어 받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나라를 지키고 사랑해야 할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 준 선조들의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