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도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내 침략, 배족사의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
‘친일파 청산’에 관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독립 이후 제대로 된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크지만, 쉽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친일파 청산에 관한 목소리를 낸 사람인 임종국 선생. 임종국 선생은 자신의 삶과 혼을 바쳐 <친일문학론>을 완성했습니다. 그가 남긴 『친일문학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까지 기록하다, 『친일문학론』
책의 제목대로 친일 ‘문학’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친일문학론은 총 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장인 ‘서론’에서 선생은 친일 문학이 어떤 문학인지를 정의하고 집필 동기를 밝힙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선대들이 그들의 통치 밑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못나게, 불쌍하게, 억울하게 살아왔는가를 또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견지에서, 어차피 한번은 정리해 놓지 않을 수 없는, 어차피 한번은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지 않을 수 없는 1940년을 중심한 전후 약 10년간의 주체성을 상실한 문학을 내 나름으로 일단 정리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의욕이 그럴 뿐 필자는 이 결과로써 그 전모를 남김없이 규명한 것이라고 주장할 의사는 없다. 즉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문제성에 충만해 있는 이 기간은 따라서 보다 다각적인 검토와 논의가 가해짐으로써만 비로소 그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2장,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서는 1930년대 이후 일본으로부터 억압받던 통치 체제에 대해 밝힙니다. 1936년 제7대 행정책임자던 미나미 지로 시대, 1942년 부임한 고이소 구니아키 시대, 그리고 1944년 부임한 아베 노부유키 시대, 총 세 시대로 나눠 ‘조선 총독부’라는 이름 아래 시행했던 비인간적인 통치 체제에 대해 설명합니다. 1930년대 이후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며 세계적으로 시끄러웠던 시기. 일본은 우리에게도 그들의 전쟁을 강요하며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2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종국 선생은, 자신 아버지의 이름까지도 기록합니다. 선생의 아버지인 임문호(林文虎)는 일제 강점기 시절 천도교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자신의 아버지가 ‘천도교청년당’으로 활동하며 행한 친일활동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이뤄졌던 친일 내용에 대해 밝힙니다. 3장 ‘문화기구론’에서는 문학계의 정기간행물, 포상제도 속에 드러났던 친일 활동에 대해 보여줍니다. 또 ‘국어문예총독상’, ‘조선예술상’,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표창’ 등 친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던 상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4장과 5장에서는 친일 문학 단체와 친일 문학인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합니다. 선생이 4장에서 친일 단체로 언급한 단체는 조선문예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황국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황도학회, 임전대책협의회, 흥아보국단준비위원회, 조선임전보국단, 대동아문학자대회, 조선문인보국회, 만주국예문가회의, 대화동맹, 조선언론보국회, 대의당 등 총 16여 개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밖에도 선생은 크고 작은, 그리고 조직과 해산을 거듭한 크고 작은 단체를 모두 합하면 총 200여개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단체가 일제의 조선 탄압을 위해 일조한 것입니다.
5장에서는 작가들이 저술했던 시 혹은 글을 통해 친일 활동을 살펴봅니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중략)...
한 땀 한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글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 노천명 「부인근로대」, 1942년 3월 4일 발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동원했습니다.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간 젊은이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여성들도 군수 물자 제작에 동원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매일신보』에 실린 노천명의 「부인근로대」입니다. 이처럼 친일 문학인들은 당시 조선인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미화하고, 일제의 신민으로서의 자세를 고취하는 시를 씀으로써 일본을 도왔습니다. 6장에서는 이런 친일 문학인들이 기고한 시와 글을 통해 그들의 비상식적인 활동을 비판합니다.
쉽게 갈 수 있었던 길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택한 임종국 선생님. 1966년, 민족의 어두운 역사를 파헤치고, 기록하는 일.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했던 일. 그리고 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임종국 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조형물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선생님의 27주기인 11월 12일에 맞춰 충남 천안에 세워질 선생님의 조형물은, 여전히 친일파 청산 문제로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큰 빛이 돼 줄 것입니다.
* 다음 [스토리펀딩]에 가면 조호진 기자가 작성한 임종국 선생님 연재 글을 읽고, 후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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