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활성화되면서 지역별로 대형 극장이 들어서고, 상영관 또한 많아져 영화 선택의 폭도 넓어졌는데요. 20여 년 전만 해도 정동극장, 대한극장 등 종로 중심부에 극장의 위치가 한정되어 있기도 하고, 개봉하는 영화 또한 극장마다 달랐기에 직접 해당 극장을 찾아가서 봐야만 했었습니다.
연극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매우 접하기 쉬워졌죠. 워낙 소극장이 많아져 원하는 공연을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종로구에서는 원각사의 복원을 추진 중이다. /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극장이 상용화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시작은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우리나라에 최초의 왕립극장인 원각사가 처음 들어온 것인데요. 서울 서대문구 신문로에 위치했던 원각사는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하고자 설립된 극장입니다.
<우리나라 연극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다 / 출처 : 근현대사 사진 자료실>
당시 수용인원 2천여 명이었던 원각사는 좀 더 원활한 관리를 위해 이후 1906년, 원각사의 운영 및 각종 사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협률사가 함께 설치되었는데요. 이로써 본격적인 원각사 운영의 신호탄을 알렸습니다. 당시 김창환, 송만갑, 정정렬, 이동백 등의 핵심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원각사가 개설된 이래로 첫 2개월 동안은 <춘향가>, <심청가>, <화용도> 등 판소리를 위주로 공연을 해왔었지만, 이후 이인직의 <은세계>라는 연극을 시작으로 한국신연극의 새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건 원각사/ 출처 : 안성신문>
하지만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원각사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됩니다. 1909년에 혁파되었고, 1914년 화재로 소실이 되고야 맙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원각사의 존재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창극은 원각사 혁파를 기점으로 향후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공연 및 영화의 역사에 큰 디딤돌이 되어준 원각사.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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