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 무리한 선행학습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요즘, 각종 대책을 마련해왔지만, 사교육 열풍은 가실 기미가 없는데요. 좋은 학교에 가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인지, 1960년대에도 ‘대학망국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교육이 사회나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입시광경 / 출처 : 중앙대 100주년기념 사업단>
대학 입학만이 사교육을 부른 것은 아닙니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입시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초등학생들도 입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 압박’에 시달려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죠.
<1960년대 중학교 입시 시험 현장 / 출처 : 더쿠>
이러한 병폐를 막고자 생겨난 ‘중학교 무시험제도’는 초등학생들의 입시와 과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였으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70년대 입시학원 / 출처 : 뉴시스>
1970년 이후에는 대학생들의 과외가 성행하기 시작했는데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았던 당시, 대학생 과외는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과외를 비롯한 사교육을 전면 금지한 ‘7.30 교육개혁조치’라는 이름으로 과외를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상류층에서는 공공연히 과외가 여전히 성행했는데요! 경찰의 단속까지 피해가며 몰래 과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몰래 과외를 하다 들키면 경찰에 잡혀가기까지 했기 때문에, 과외비에 위험수당을 붙이면서까지 과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각종 과외 전단들/ 출처 : 오마이뉴스>
이러한 과외 전면 금지는 9년간 유지되다 서서히 빗장이 풀려갔습니다. 이후로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사설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을 잡기 위한 정책들이 꾸준히 마련돼 왔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사교육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은 선행학습과 복습 등에 있어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교육의 황폐화, 가계부담의 증가, 빈부에 따른 교육 차등 등의 부작용도 나타나곤 하는데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듯, 무조건 앞서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단계별 교육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며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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