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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인물]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글, 한글을 알린 주시경 선생

세종대왕이 만들고 주시경이 알리다

 

유네스코는 문맹 퇴치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단체에 세종대왕상을 수여합니다. 그 만큼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임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것입니다. 조선시대 언문’, ‘암클’, ‘아랫글이라 불리며 무시당한 훈민정음은 갑오개혁 때 비로소 공식적인 나라 글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15세기에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19세기 근대에 사용하기에는 잘 맞지 않았지요. 이를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글자의 모습으로 만들고,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른 이가 바로 학자 주시경 선생입니다.

 

쉬운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다

 

주시경 선생은 어릴 적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면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한문을 한문 음대로 먼저 읽어주면, 아무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훈장님이 다시 우리말로 풀어주는 걸 보며 왜 우리말로 하면 알아들을 말을 어려운 한문으로 공부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이렇게 우리말과 글에 관심을 갖던 그는 한글을 연구하기로 결심합니다.

 

 ▲  지석영이 지은 국어사전 형식의 교과서,  190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전시실 전시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해 신학문을 접하면서 그는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기 나라의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며 국어문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는 일반 민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려했던 독립신문 발행인 서재필을 만나게 되고, 독립신문사의 총무 겸 교보원(교정보는 사람)으로 일하게 됩니다.

 

당시 유일한 국문법 연구자였던 주시경 선생은 독립신문 편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근대 인권과 민권, 남녀평등 사상을 담은 독립신문은 누구나 익히기 쉬운 한글이라는 날개를 달고 더 많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 한글배곧(조선어강습소) 수료증과 졸업증 '마친보람', '다깬보람', 1915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전시실 전시



현대 국어의 기틀을 마련하다

 

주시경 선생님의 중요한 업적은 한글 연구에 대한 공헌이 아닐까 싶은데요, 글의 창제 원리를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도 전에, 주시경 선생은 영어 알파벳의 원리를 이용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내고 한글의 문법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독립신문을 편찬할 때 국문동식회를 만들어 한글 맞춤법을 정리·통일했으며, 1898년에는 그간의 연구를 모은 <대한국어문법>을 완성했습니다. 1907년에는 국문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글자체와 철자법 등 한글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우리말로 나라를 지키려한 학자

 

주시경 선생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언어까지 잃게 된다면 영원히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우리말과 글,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습니다. 또 국어강습소를 설립·운영하여 우리말과 글을 교육하며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과 자주 독립정신을 일깨우는데 힘썼습니다.

 

이렇게 몸도 돌보지 않고 한글 연구와 강의에 열중하던 선생은 1914년에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됩니다.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맞이한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조선어학회를 만들고 국어사전 편찬과 표준화에 애를 썼으며,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로 이어져 우리글 연구를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조선어 표준말 모음집, 194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전시실 전시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주시경 선생. 그는 글에서 정신이 나며 그 정신이 서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자기 학문에 헌신했던 학자 주시경 선생의 마지막 말을 떠올려봅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니라...”

-한힌샘 주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