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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10원짜리 라면에서 우주라면까지, 라면의 변천사

10원짜리 라면에서 우주라면까지

호로록호로록, 라면의 역사

 

추석 연휴 동안 맛있는 음식을 드셨나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다보면 칼칼한 라면 생각이 나실텐데요. 입맛이 없거나 끼니 챙기기 귀찮을 때, 늦은 밤 출출 할 때 간단히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의 유혹은 뿌리치기가 힘듭니다. 1963915일 우리에게 첫 선을 보인 라면이 우리 식탁에 올라 온 것도 어느새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손바닥만 한 실쪼가리를 먹는다고?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으로 대다수의 서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던 1960년대 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으로 꿀꿀이죽을 끓여 먹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그 음식의 위생 상태는 좋지 않아 먹고 탈이 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배를 채우려고 꿀꿀이죽이라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삼양식품전중윤 회장은 일본 출장에서 본 라면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배고픈 서민을 위한 음식으로 라면이 제격이라고 판단했고, 일본의 라면 기술을 도입해 닭고기 육수 맛의 라면을 생산했습니다. 그 라면의 가격은 10. 꿀꿀이죽이 5, 커피가 35원이었던 당시 물가에서 보면 서민들도 어렵지 않게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라면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익숙하게 먹던 소면과 달리 기름에 튀겨 내어 꼬불꼬불한 라면이 너무나 생소했던 탓이지요. 당시 사람들은 라면을 옷감이나 실로 오해 했고, 국수와 다른 방법으로 끓여먹는 것 또한 어색해했습니다.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출처: 삼양식품)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급성장

 

간편한 조리방법과 저렴한 가격,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금세 배를 채울 수 있는 라면은 이후, 가난한 서민들이 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쌀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치면서 라면시장은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훈분식 장려 운동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그러자 삼양식품 외에도 많은 식품회사들이 새로운 라면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농심라면의 전신인 '롯데라면',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등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라면들이 마트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경제가 점차 발전하면서 끼니 때우기 음식이었던 라면에 고급화, 다양화가 이루어집니다. 닭고기 육수에서 소고기 육수로 국물의 재료가 달라졌고, 1972년에는 좀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컵라면도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끕니다. 1986년에는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신라면이 출시되기도 했죠20084월에는 우리나라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한국의 라면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덧 라면은 해외로 수출되는 대표적인 효자상품이 되었습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라면은 지난 1998년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으며 매년 미국, 일본 등 해외진출 국가를 늘리며 수출 기록도 빠르게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식품 기업들이 해외로 수출한 라면이 무려 21552만달러(2170억원)라고 하는데요. 전후 우리 국민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라면, 일본의 기술로 만들었던 제품이 어느새 세계인을 사로잡는 한국인의 맛으로 당당히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보니 자랑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