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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가운을 입은 산업역군 코레아니셰 엥겔

가운을 입은 산업역군

코레아니셰 엥겔

 

103일은 우리에게 개천절로 기억되는 날이지요? 하지만 독일에서는 1990년 서독과 동독이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룬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분단 국가라는 가슴 아픈 공통분모를 가진 나라로, 1960년대 이후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1966103, 정부에 의해 우리나라 간호 인력이 최초로 서독에 파견되기도 했지요.

 

사람이 재산인 한국, 인력을 수출하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외화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해외로 인력을 수출하였는데요, 첫 번째로 광부와 간호사가 서독으로 파견되었습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 7,900여 명과 간호사 1700여 명이 해외로 진출하여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파독 간호사 사진(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코레아니셰 엥겔계속 머물러주세

 

서독에 먼저 도착해서 외화를 벌어들인 이들은 광부였습니다. 이어 1965년부터는 독일에 있는 한인 의사들에 의해 간호사 파견이 이뤄집니다.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야 했지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에서 코레아니셰 엥겔(한국의 천사들)’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3년 내 반드시 귀국해야 하는 계약조건으로 파견되었지만, 간호사들의 잔류를 원하는 독일병원이 늘어나고 독일 언어와 병원 생활에 익숙해져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 한국 간호사들의 계약은 사실상 무기한으로 연장되었습니다.

 

한국 간호사나 간호보조원의 무기한 독일체류가 가능해지면서 이들과 결혼한 광부들도 체류가 가능해졌고, 이들을 통해 독일 국적을 얻게 된 한국 동포들도 증가하게 됩니다. 독일로 떠난 간호사 중 1/33년 후에 귀국했고, 1/3을 독일을 거쳐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떠났습니다. 나머지 1/3이 독일에 남아 오늘날 독일 거주 한인이주 1세대가 되어 서독에서 독일이 통일 되는 것을 맞이했습니다.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날의 아쉬움은 더 컸겠지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된 천사들


파독 광부의 편지와 여권(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독에 파견된 광부들은 목숨까지 위험한 탄광을 드나들어야 했고, 간호사들은 언제나 비상대기를 해야 하는 병원에서 낯선 언어와 환경을 이겨야했지요. 이들은 이처럼 어렵게 일하고 받은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습니다. 송금액은 1153만 달러로 연평균 1천만 달러가 넘었는데, 당시 한국 총수출액의 1.6%~1.9%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1달러의 외화도 아쉽던 시절, 그들이 송금한 돈은 한국 경제 개발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3전시실에서는 당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글을 읽다보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조국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매일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었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