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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을 알리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을 알리다

 

대한제국,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파리 만국박람회 참가

1897년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고, 전 세계에 자주 독립국으로서 대한제국의 존재를 알리고자 3년뒤인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만국박람회 참가는 1896 1월 프랑스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이뤄졌는데, 해외 박람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당시 정치ž경제적 대한제국의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자 노력했던 대한제국 정부의 강한 의지로 이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한국관,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다

파리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1900 4 14일부터 11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는 대한제국의 문화와 문물이 전시된 한국관이 세워졌습니다. 한국관은 경복궁의 근정전을 재현한 주전시관과 옛 국왕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을 별채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첫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히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관을 묘사한 프랑스 잡지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은 태극기를 표시해 당당하게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잡지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에 실린 한국관

(출처: <정동1900>, 서울역사박물관)

 

한국관 전시품, 우리 산업과 생활문화를 소개하다

한국관의 전시품은 정확하게 어떤 것이 전시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한제국과 프랑스 정부간에 오고 간 문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우리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나타내는 비단, 놋그릇, 도자기, 칠보 등의 공예품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며, 이 밖에도 악기, , 가구, 예술품 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만국박람회는 참가한 나라들의 산업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고, 전시는 물론 시상도 했는데 대한제국은 식물성 농업식품 분야에서 그랑프리(대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한국관 내부 모습 (출처: <정동1900>, 서울역사박물관)

 

프랑스에 남은 한국관 전시품

1900 11 12일 파리 만국박람회가 폐막된 후 한국관에 출품되었던 전시품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부분 현지에 기증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관례이기도 했지만 본국으로 회수하는데 드는 과도한 운송비용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전시품들은 프랑스에 있는 국립공예박물관, 국립예술직업전문학교, 국립음악원 음악박물관, 국립 기메 아시아박물관 등에 소장되어있습니다. 특히 전시품으로 기증된 악기들 중 해금은 현존하는 해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유물을 멀리 두고 올 수 밖에 없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왼쪽부터 백자 청화 국화문 병(프랑스 공예박물관 소장), 용고(프랑스 음악박물관 소장), 해금(프랑스 음악박물관 소장)

(출처: <정동1900>, 서울역사박물관)

 

작고 힘없는 나라 대한제국이 세계 강국들이 모인 만국박람회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1900년 프랑스 파리에 한국관이 우뚝 세워졌습니다. 그 존재만으로 독립된 나라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목표는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5년 후인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서 세계에서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