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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복70년, 가족 내에서 70년을 되찾다>월남전에 참전한 아버지

월남전에 참전한 아버지

 

 

영화 <국제시장> 에서 주인공 덕수와 달구가 전쟁중인 베트남에서 몸은 숨기는 모습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사 돌아왔네~~~’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의 배경이 된 월남 파병’. 지금의 어린 사람들은 아마 거의 모를 것 같습니다. 월남 파병은 1964년부터 1972년까지 9년에 걸쳐 베트남전쟁에 국군을 파견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파병입니다.

당시 파병 군인들은 짧게는 2, 길게는 3년에서 4년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했는데요, 현재는 저희 아버지를 비롯하여 월남참전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으로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1964911, 부산항에서 출발한 베트남 파병

 

   

월남전쟁 파병 (출처 - 전쟁기념관 http://wmk.kr/ko/704 )

  

1964 9월 부산항에서는 수많은 대한민국 군인들이 배에 올랐고, 베트남 파병을 환송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자식을 떠나 보내는 어머님들의 꼭 다시 돌아오라는 눈물 섞인 말과 함께 우리의 젊은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첫 해외파병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또한 젊은 시절, 우리나라 최초 군수물자지원병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셨습니다. 3차 월남파병 결의안의 통과로 196591일 강원도 홍천군에서 창설된 제 100 군수사령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모든 대한민국의 군사조직을 위한 전투/지원 근무 사령부로서 활동하였던 부대입니다.

 

군수물자 수송부대는 베트남 내에 있는 모든 대한민국 부대에 후방 지원과 물자를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부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월남전에서 복귀 후 받은 부대상패

 

저는 아버지께서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이셨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에 상패와 훈장들을 보며 호기심에 아버지께 여쭈어보면 월남 다녀와서 받은 훈장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월남전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20대가 지나서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월남은 왜 갔냐며 물어보면 국가기밀이다라는 식으로 농담을 하시며 말씀을 잘 안 해주셨죠. 물론 제가 20대가 되어서 아버지께 여쭤봐도 잘 알려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국가유공자로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월남참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퇴근하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술을 한 잔씩 걸치셨습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평생토록 짊어지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에서야 이해됩니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버지 세대가 전쟁과 나라의 불균형 안에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버팀목으로서 헌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월남파병으로 인해 고생한 저희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많은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