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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복을 기념하다, 경복궁에서 수원 화성행궁까지

광복을 기념하다, 경복궁에서 수원 화성행궁까지

 

올해는 광복 70주년입니다. 우리 조는 광복을 기념할 만한 곳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하여 방문해 보았습니다.

: 경복궁 탑골공원 환구단 - 수원 화성행궁

 

 

 

1.   경복궁

청계천과 광화문광장 뒤에 있는 경복궁은 1395 (태조 4)에 창건되어 왕권의 위엄을 상징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과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주인을 잃은 경복궁은 방치되다 못해 외국인들의 관람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요일 하루 경복궁을 구경한 사람은 2,118명에 이르러매일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 – 대한매일신보 1908.04.28

자선당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했던 동궁)은 오쿠라 키히치의 일본 집으로 반출되어 사설 미술관 조선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석축만 남은 채 1996년 경복궁 뒤뜰로 돌아왔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건물이 아닌 계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선당 모습

 

그리고 일본은 1926년 경복궁의 3대 문인 흥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건설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대표 궁궐에다가 조선총독부를 세운 것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치자라는 것을 의식을 확실하게 심으려는 의지였다고 합니다. 이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서야 철거되었습니다.

 

  

: 조선총독부 청사 모습 (출처: 부경근대사료연구소)

: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 모습

 

2.   탑골공원

서울 강북의 중심 종로에는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탑골공원이 있습니다. 사적 354호로 지정된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공원입니다.

1987년 영국인 J.M.브라운에 의해 만들어진 탑골공원은 황실공원으로, 관현악단이 황실 음악 연주소로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탑골공원은 일요일에만 공개하여 관현악을 연주했는데, 음악을 듣기 위하여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1913 7월부터는 평일에도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그러자 일제강점기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탑골공원의 정문 삼일문

 

탑골공원의 정문인 삼일문으로 들어가면 공원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탑골공원에는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천도교 대표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을 비롯해 민족대표 33인이 만든 기미독립선언서 등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손병희 선생님 동상

: 3.1 시위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인 정자와 기미독립 선언문

 

3.   환구단

                                               


환구단은 조선시대 당시 하늘에 제사를 드렸던 제단입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지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조선이 중국의 신하 나라인 왕국에서 황제의 국가인 제국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고종은 주권을 확립하고 중국과의 단절을 상징하기 위해 남별궁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곳)에 환구단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1913년 환구단 부지를 허물고 일왕 즉위식에 사용될 경성철도호텔을 지었고, 위판을 보관한 황궁우만 남겼습니다. 1968년 철도호텔을 헐어지고 지금의 웨스틴 조선 호텔이 생깁니다. 현재 환구단은 조선호텔 정원 앞에 있습니다.

 

   

(출처: 조선호텔 100주년 기념 전시 <100년의 기억 그리고 유산>)

가운데: 현재 덕수궁 석조전에 걸린 환구단의 옛날 사진

오른쪽: 현재 덕수궁 석조전에 걸린 환궁우의 옛 사진

 

아래 사진은 환구단 정문입니다. 환구단터에 남은 유일한 유물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환구단과 여기에서 쓰였던 의례 도구인 환구제를 공개하는 <황제국의 상징, 환구단과 환구제> 테마전시를 오는 5일부터 12월 말까지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4.   수원 화성행궁

수원 화성행궁은 1919 3 3.1 운동이 벌여진 또 다른 장소입니다. 일본육군성 조선소요사건 관련 보고서를 보면 '기생 약 30명이 자혜의원 (현재 화성행궁 봉수당 앞) 앞에서 독립만세를 큰 소리로 외치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 봉수당

 

그들이 만세를 위해 모인 곳은 화성행궁 봉수당 앞입니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중심에 되는 건물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이 자리에 자혜의원이 들어섰는데요, 자혜의원은 기생들의 위생 검열을 실시하던 곳이었습니다. 말이 좋아 검열이지 일종의 기생에 대한 통제수단이었습니다.

 

 

수원 화성의 신풍루

 

그리고 봉수당을 지나 화성행궁 정문 쪽을 보게 되면 신풍루가 있습니다. 신풍루 옆, 호위군사들의 숙소인 북군영에는 당시 일제의 수원경찰서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일제 경찰이 총칼로 무장한 채 식민지 백성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독립운동을 억눌렀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은 이 외에도 많지만 제일 대표적이라고 생각되는 곳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독립운동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희생하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