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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복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발자취

광복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발자취

 

1945 8 15.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2015,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복을 위해 힘쓴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광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그럼 다같이 탐방을 시작해 볼까요?

 

광복과 관련된 다양한 장소가 있는데요, 저희 조는 서울을 중심으로 서대문구, 종로구, 성북구에 있는 광복의 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

 

 

(지도 출처: 서울시청)

 

첫 번째, 일제에 항거하며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이곳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1021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지만, 광복 이후 1121일에 서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고, 대한민국 정부의 교도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지금은 제 10·11·12옥사와 사형장이 국가사적 324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 서대문구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니, 한번쯤 방문하여 우리 독립투사들의 열정과 굳은 의지를 확인해보면 어떨까요?

 

두 번째는,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경교장입니다.

 

  

 

경교장은 이화장, 삼청장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건국 활동의 중심을 이룬 3대 요람입니다.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경교장을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라는 다리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지요. 아쉽게도 지금은 공사로 인해 내부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있으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방문해보도록 합시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을 지내신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사셨던 이화장입니다.

 

  

 

이 일대는 조선 중종 때부터 배 밭이 많아 봄이면 배꽃이 만발했다고 하여, 현재도 이화동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광복 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경무대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하야 이후부터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지요.

 

네 번째는, 광복 이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인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위)가 있던 풍문여자고등학교(풍문여자중학교)입니다.

 

 

 

1945 8월 초, 일본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일본은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이 안전하게 한반도에서 철수하고자 당시 한국 민중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던 여운형과 협상하고자 했습니다. 여운형은 총독부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8 15, 바로 건국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죠. 민족 해방의 첫 걸음을 내딛은 건국준비위원회 당시 풍문여자중학교에 첫 사무실을 두고 활동을 하였습니다. 당시 풍문여자중학교는 현재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되어 안국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풍문여고와 안국동을 둘러보며 광복의 첫 한걸음은 어떠했는지 느껴봅시다.

 

마지막으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무신 심우장입니다.

 

 

(출처:문화재청)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지내셨던 곳으로 지금의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심우장의 모습을 보려면 성북동의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야 하지요. 흔히 한옥은 남향을 선호하는데,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 선생은 조선총독부를 마주하게 되는 남향을 거부하고 북향 터를 선택했습니다. 그만큼 조국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낄 수 있지요. 심우장 앞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를 보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던 한용운선생의 성품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가을이 다가오는 지금, 광복의 발자취를 찾아서 다 함께 떠나볼까요?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