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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한국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한국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사진 (출처- goodnews)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만한 말이죠? 바로 2009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말입니다. 그의 선종과, 선종 이후 영화 <그 사람 추기경>이 개봉하면서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성직자이신 김수환 추기경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 초반

 

 

교황 바오로 2세로부터 추기경 반지를 수여 받는 김수환 추기경 (출처: goodnews)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1922 6월 대구에서 태어나 2009 2월에 선종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식 수업을 받고, 1944년에는 졸업 직전에 강제로 학도병에 징집되어 사관후보생 훈련도 받았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성신대학에 입학하여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안동성당에서 사목 생활을 시작했으나 1956년 뮌스터대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한국노동자들을 돌보느라 결국 졸업은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1964년 귀국한 후 가톨릭시보사사장에 취임하고 강연활동을 하다가 1966년 마산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1967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가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은퇴하자 1968 4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주교로 서임되었습니다.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은 1년 후인 1969년이었는데, 당시 47살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

 

 

추기경의 박정희 대통령 방문, 청와대, 1969.7.1 (출처: goodnews)

 

6월 항쟁,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피신하자 경찰이 성당으로 투입하려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하며 경찰들을 막았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민주화 요구가 점점 커지던 70년대와 80년대. 가톨릭 교회는 민주주의를 위한 목소리를 지지했고 그 선두에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구금되자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면담하고 독재를 강하게 비판하여 결국 지 주교의 석방을 얻어냈습니다. 또한, 1971대한민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성탄 미사에서 그는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이런 법을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라며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80년대, 12.12 사태 이후 전두환 소장이 인사를 오자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비판했습니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박종철고문치사사건, 4.13 호헌조치, 6월 항쟁 등 사건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문민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정의를 위한 정치를 끊임 없이 요구했습니다.

 

사람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출처: goodnews)

 

김수환 추기경은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회자됩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로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끊임없이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민을 글로 써 책으로 창간되기도 하였는데요,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요, 전시회를 열어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울 교구장에서 물러난 이후 2년 여간 게시판에 올라온 신자들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하고, 생명 윤리에 관한 강조도 많이 했는데, 생명경시 풍조를 지적하며 사형 직전의 사형수들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 지도자로서 한국 최초의 추기경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그의 우직한 성품,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판단력, 가톨릭 교회를 이끈 리더십, 또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열망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본받을 만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9가지 인생덕목

 

1.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2.     수입의 1%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해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3.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깎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4.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 하고, 젊은이를 동자로 만든다.

5.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6.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7.     기도는 놋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 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 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이웃과 절대 등지지 말라.

8.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 봐야 한다.

9.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사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 걸렸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