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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야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야기

 

2015년 초,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제시장을 보셨나요? ‘국제시장은 우리나라 1960, 1970년대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출처: 영화 국제시장공식 사이트)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덕수와 달구는 미군들에게 초콜릿을 받아먹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한 이상한 청년. 갑자기 와서는 이 나라에 배를 만들어 해외에 팔 거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기에, 그의 말은 곧 허풍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1972년 진짜 조선소가 건립됩니다. 영화 속 허풍 같은 말을 늘어놓던 청년이 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입니다.

 

 

 (출처 : 아산정주영닷컴)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는 거야

2015년은 아산 정주영 현대회장 탄생 100년 되는 해입니다. 정주영은 대한민국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이병철 삼성회장과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인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에서 3만 달러까지, 100배나 오른 것에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는 거야영화에서도 나온 이 말은 항상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주영 어록에 항상 등장하는 말로, 항상 낙관하는 자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상상 속의 일을 현실화시켰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6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근차근 일을 배워나갔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표본으로 삼을 만한 업적을 남겼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기업인이면서 동시에 정치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경영과 정치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길, 그렇기에 이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과감한 뚝심, 따라올 수 없는 결단력은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 1998, 500마리의 소와 함께 판문점을 넘어 북에 방문도 하고 금강산 관광을 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북한을 오가며 남북한의 교류를 도왔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견인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전형적인 기업인,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 정주영 회장. 하지만 그의 존재로 인해 우리나라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력은 지금도 많은 기업인, 청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한걸음기자단 2기 3조 이기동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