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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기억하고 싶은 남자. 김원봉

기억하고 싶은 남자. 김원봉

 

20158월 대한민국 광복 70, 극장가는 <암살>이라는 영화로 술렁였고, 영화에서 배우 조승우가 열연한 김원

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되었습니다.

 

 

(출처 : KOCCA문화콘텐츠 / 영화 암살공식 홈페이지)

 

김원봉이란 이름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명한 배우가 맡았던,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 과연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김원봉인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터라 영화에서 나온 인물이 정말 실존인물일까? 하는 의구심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활동하였지만, 지금 우리 중 과연 몇 명이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약산 김원봉

약산 김원봉이라 불렸던 그는 189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19년 만주에서 13명의 청년으로 결성된 의열단을 조직하여 독립 운동의 선봉에 서서 지휘하며 무정부주의 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0대 초반으로, 22살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조국을 향한 열기와 용맹함은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최고의 현상 수배금을 걸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더불어 일본에 위협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1939년 백범 김구과 함께 동포에게 고함이란 성명서로 중국 내 한인동포의 단결을 촉구하였으며, 그의 부인 박차정 여사도 여성독립투사로 이름을 떨치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가 백범 김구와 함께 독립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잘 안 알려져 있는 이유는 광복 이후 인민공화당 위원장 활동을 하다,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 참석 이후 북한에 남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산 김원봉, 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전히 그의 몸과 가정을 받쳤던 인물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