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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최초로 대한민국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최초로 대한민국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우리나라에 최초로 방한한 교황을 소개합니다.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에 우리나라를 두 차례나 방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이유는 한국이 분단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인 중 최초로 교황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폴란드 또한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 인해 다른 유럽지역들과 함께 전쟁과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한국이 그의 모국인 폴란드와 많이 닮았다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분단국가의 평화를 염원 할 정도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차례에 걸쳐 한국에 방한을 하게 됩니다.

 

 

1984 5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당시 김포공항에 내려 한국땅에 입맞춤하는 교황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1984년 첫 방한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53~7일까지 방한을 하였습니다. 당시한국 천주교 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였습니다. 그의 방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53일 낮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 트랩 아래 엎드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던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순교자의 땅’ 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한국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습니다. 또한 도착 성명에서 논어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인사해서 큰 화제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기간 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모시는 역사적 시성식을 주례하기도 했는데 시성식이란 가톨릭 즉 천주교에서 성인품으로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서울과 광주, 대구, 부산을 돌며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사제서품식을 주례하고 노동자와 농어민, 서민, 한센인(나환자) 등을 두루 만나고 여의도 광장과 광주 무등 경기장, 대구 시민 운동장 등에서 인파가 몰린 가운데에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 방문 당시 행사장인 무등 경기장 가는 길에 5.18 상처가 있는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거쳐 갈 것, 그리고 소록도 나환자 병원에 갈 것을 고집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낮은 자를 위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출처: 국가기록원)

 

1989105~8일 짧은 일정으로 두 번째 방한을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위해서였는데요. 이 때도 65만 명이 몰린 여의도 광장 행사에서 남북한 화해를 기원하는 평화메시지를 낭독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후에도 한국에 큰일이 있을 때면 종종 애정 어린 메시지를 보내곤 했으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축하메시지를, 2002년 태풍 피해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등을 당했을 때에서 한국에 위로 메시지를 보내며 한국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한국 역사책 번역본을 읽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얼마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을 가졌고 북한과 남한의 평화와 안녕을 바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은 나라 한국을 오래 기억하였으며 평화와 안녕의 기도를 보내주었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