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熱戰)만큼 무서웠던 ‘IMF 외환위기’
1998년 ‘금 모으기 운동’은 과거의 국채보상 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애국심 끓는 단어로 IMF 외환위기 때 탄생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에서는 열전(熱戰)만큼이나 무서운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외국 자본에게 먹힐 뻔 한 이 커다란 위기 속에 금 모으기 운동이나, 기업의 구조조정과 같은 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협조로 타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중대하고 커다란 사건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금 모으기 운동‘ 이라는 아름다운 미담 하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IMF 외환위기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외환위기 사태란 무엇이고 왜 일어난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국제 통화 기금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서 돈을 빌린 것 일까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국가 (출처: 위키백과)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는 태국에서부터 아시아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 시장 전체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5,400억의 한국주식을 팔아버립니다. 한국은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자국 화폐가치가 폭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맞이하게 되었고, 기업의 외채를 갚기 위해 정부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꺼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행들 역시 달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IMF 구제금융 요청 (출처: MBC)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보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은 IMF에게 금융구제를 요청합니다. 즉, 잠시 달러를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IMF는 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한국 경제의 중요한 결정권을 IMF가 갖는다는 조건과 더불어 많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IMF의 조건을 요약하자면, ‘망해가는 기업과 은행을 국가가 도와 주지 말고, 기업도 개인도 완전한 경쟁 체제로 능력에 따라 살아남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IMF는 한국을 믿지 못해 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채무 이행의 서약을 받아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출처: 공공누리)
이렇게 전국적으로 국가 부도의 위기를 느끼자 한국은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며 단결력을 보여주었고, IMF와 세계의 은행들은 이런 한국의 모습을 보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이 공정히 고통 분담을 할 것을 약속하며 경제위기 타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IMF와 전 세계은행들이 한국의 채무를 단기에서 장기로 변환하게 해주는 계기 즉, 한국이 당장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출처: KBS)
이러한 변화는 다시금 외국 투자자들을 한국으로 끌어왔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 경제는 점차 성장하여 결국 2001년 8월 23일 IMF 구제금융 조기상환을 완료하며 IMF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IMF외환위기시기는 정말 모두에게 힘이 든 시기였습니다. 월급이 안 나와 한 달을 굶거나, 천정부지로 비싸진 이자 덕분에 돈을 구하지 못해 부도가 난 기업, 넘어간 공장 등의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실업자 역시 어마어마했고, 집을 날리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해체나 가정 폭력 역시 증가했다고 합니다.
금 모으기 같은 미담이 더 가깝게 느껴졌던 IMF. 이제 더 상세하게 와 닿으시나요? 우리 모두 이렇게 험난한 시기였던 IMF 외환위기를 잊지 말고 항상 노력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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