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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운동

 

최근 들어 큰 규모의 시위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저는 시위에 직접 참여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모인 시민들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시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6월 민주항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6월 민주항쟁의 시작

 

 

(사진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 민주항쟁은 1987 6 10일부터 6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서울 시내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신생 야당과 재야 세력은 간선제인 헌법을 직선제로 개헌할 것을 전두환 정부에 요구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은 이를 전면 부정한 호헌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 이전에는 박종철이라는 대학생이 시위에 가담했다가 고문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음을 폭로되었고, 이에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옳지 못함에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자주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6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을 입으면서 폭력적인 진압에 흥분한 시민들은 더욱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항쟁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 이한열기념사업회)

 

6월 민주항쟁의 경과

610일부터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했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오후 6시를 기해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민중항쟁의 뜻으로 차를 세워서 경적을 울려줄 것 또는 흰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많은 시민이 이에 참여하여 택시기사님들의 경적소리와 시내버스에서 흰 손수건을 흔드는 시민들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여고생들은 민중항쟁 참여자에게 마실 물과 도시락을 가져다 주는 등의 온 시민이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6 10일의 시위대는 명동성당으로 가서 농성을 계속했고, 차츰 시위의 규모는 커졌습니다. 시 전체에서 시위와 해산이 거듭되다 차츰 시위가 잦아들면서 해산을 하엿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지방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 되었고, 정부는 대학교에 무기한 휴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6 26일에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전개되었고 무려 3,467명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회사원들, 넥타이 부대들의 시위 참여로 6월 항쟁은 학생 항쟁에서 시민 항쟁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29 공동선언

결국 정부는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고, 6.29 공동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 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1988 2월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실행하도록 한다.

2.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3.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이 과감히 제거가 되어 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4. 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한다.

5.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서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6. 사회 각 부분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7.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8.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1980년대, 사회적으로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염원과 단합이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역사의 중요성은 역시 과거를 비추어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현재 사회는 어떤가요? 1987년 이뤄낸 6.29 공동선언이 적용된 사회인가요? 이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났고,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은 5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이 부르짖던 진정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합니다. 앞으로의 발전할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염원하며 마지막 개인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