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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내 마음속으로의 울림, 안중근

내 마음속으로의 울림, 안중근

 

한걸음 기자단 활동을 시작하며, 저는 마음속으로 소소한 목표를 세웠었습니다활동하는 기간 동안 열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은 취재가 없더라도 다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전시를 관람했는데, 그 중 제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2015 3 31일부터 진행됐던 <울림, 안중근을 만나다> 특별전이었습니다. 전시는 3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부는 [하얼빈 역에 울린 총성]이라는 테마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었고, 2부는 [뤼순에 울린 외침]으로 하얼빈 의거 후부터 사형 집행 당하기 전까지 안중근의 궤적을 담고 있었습니다. 3부는 [가슴에 품은 사진 한 장, 대한국인 안중근]으로, 안중근이 죽은 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 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모습 / () 안중근이 의거 당시 사용한 권총

 

안중근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안태훈에 의해 선진 문물과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며, 세상에 대한 관점을 쌓아갔습니다. 그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며 국채보상운동을 진행했으나 이내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안중근은 러시아로 이동해 무력을 통한 의병운동을 전개하나 이 역시도 일본에 고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안중근은 좀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통감으로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하지요. 안중근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일을 계획해 1909 10 26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 안중근 가족이 세례 받은 내용을 기록한 뮈텔문서” / () 안중근이 쓴 글씨

 

안중근은 현장에서 바로 잡혀, 뤼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안중근은 일본인 순사에게 심문 당하며, 자신은 조선의 의병으로써 한국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화합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를 15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논리적으로 말했지요. 이에 일본인 순사가 감동을 받아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사형을 결정했고, 이를 그대로 선고했습니다. 이 선고 소식을 받은 안중근의 어머니는 안중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거라. (...)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은 어머니와 뜻을 함께해 재심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안중근은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감옥에서 안응칠역사동양평화론등을 저술했습니다. 또한 "국가안위노심초사"와 같은 문장들을 써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 1961년에 추서된 건국공로훈장 / ()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

 

안중근은 결국 1910 3 26일에 사형집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중근은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고 했으나, 이는 오늘날까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김구는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와,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의 유골을 국내로 안장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들어갑니다. 그 결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는 효창공원에 안장되지만, 안중근은 유골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구는 안중근의 묘를 꼭 찾겠다는 의지로 허묘를 만드나, 1949년 김구 역시 암살되면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정부는 2008년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나섰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순국 100주년 기념으로 중국에서도 우표를 만들어 기념할 만큼,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입니다. 꼭 유해를 찾아 늦게라도 조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