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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

조선의 독립을 위해 운동한 독립운동가는 모두 한국인일까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텐데요!

 

푸른 눈의 외국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바쳐 일했다면..? 믿겨지시나요?

바로 조지 루이스 쇼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조지 루이스 (George Lewis Shaw 1880~1943, 이하 쇼우)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조지 루이스 (George Lewis Shaw 1880~1943)



중국 푸젠성 푸저우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태어나 1900년경, 한국의 <은산금강> 회계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쇼우. 1907 중국 단둥으로 건너가 무역회사 선박회사인 이륭양행 설립하며 일본인 아내 이토 후미 결혼해 아들을 두었습니다.



조지 루이스 쇼와 그의 아내 이토 후미


일본인 아내를 두었지만 그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울 있었던 것은, 그가 아일랜드 출생이었기 때문인데요. 아일랜드는 800 가까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독립의 열망을 가진 조선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게 느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륭양행 [출처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러한 자연스러운 이유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게 쇼우는 과감한 독립운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륭양행 2층에 임시정부 교통부의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도록 돕고 무기운반, 독립운동가의 자유로운 출입국, 군자금 전달 중요한 창구의 역할을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인 관헌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 의열단 지원하기 위해 의류품 화물상자에 몰래 폭탄을 넣어 보내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신변이 위험해질 때면 안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쇼우의 활동에 조선총독부는 1920 7 11 쇼우를 체포해 서대문 형무소에 가두었습니다.

 

영국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4개월 만에 석방된 쇼우는 출옥 후에도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의 독립을 도왔습니다.

 

한국정부는 오랜 수소문 끝에 쇼우의 유족을 찾을 있었고, 그의 손녀와 증손녀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지난 2012 8 16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했습니다.

 

여러분은 타인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적이 있나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을 있는 상황에서 용기를 보여주며 독립운동가를 지원해준 쇼우의 정신과 용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빛날거예요!

고마워요 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