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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합정역 양화진 공원




안녕하세요! 한걸음 기자단 3 최지원입니다.

저는 이번에 합정역 7번출구에서 10 거리에 위치한 양화진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홍대를 즐겨찾는 편인데요! 근처에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가 숨어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우선, 양화진 어떤 곳인지 알고 게신가요?

양화진은 조선왕조에서 교통,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된 곳으로 서해로 들어오는 교역품이 도성과 궁궐, 전국으로 거래되었던 곳임과 동시에 외부세력의 잦은 침입으로 대원군 당시 군진이 설치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병인양요 때에는 프랑스의 함대 3척이 양화진까지 침범하였고, 사건을 계기로 대원군은 곳에서 천주교도들을 무참히 살해하기도 하였다. 양화진은 한양(서울) 최대 요충지이자 동서 문화간 충돌이 가장 극심했던 곳이라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상징하는 전국 각지의 척화비 하나도 , 절두산 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양화진 홍보관에 들렀습니다.

양화진 홍보관에서는 현재 <로제타 홀의 일기> 공개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평일이라 조용했지만, 들어가자마자 관리하시는 안내사분께서 오셔서 안내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18, 19세기 머나 길을 떠나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뜻을 확인할 있었습니다. 종교적 사명 이외에도 한국에 대한 사랑, 교육, 봉사 실제 인물들의이야기가 전시되어있는 공간입니다. 종교를 떠나, 자신의 소명을 일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곳에서 숙연해졌습니다.

 

다음으로, 양화진 선교사 묘원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천주교의 성지로 한국을 위해 희생적인 노력을 했던 417명의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장 먼저, 조선인 환자들을 위한 병원, 광혜원 운영하던 헤론 필두로 양화진은 우리나라에서 숨을 거둔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교육자들의 묘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도 맥락을 같이한,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틴여사, <대한 매일 신보> 통해 억눌린 한국인들의 대변인 활동했던 베델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헐버트 한국의 은인,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알려진 인물로,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고종의 밀사로 외교적인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헐버트의 묘비명을 보면 한국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있는데, 역시 묘비명을 확인하고 뭉클한 감동이 들었습니다.

 

Homer B. Hulbert (1863-1949)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절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절두산은, 1866 프랑스 군함이 천주교 탄압을 이유로 양화진까지 진입한 병인양요 당시, 이에 분노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박해하고 탄압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를 잘라 너머 절벽으로 던졌다하여 절두산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인 믿음을 같이 하지 않는 또한 먹먹한 마음이 들어 조용히 길을 따라 거닐었습니다. 기억의 , 양화진 이름따라 많은 분들이 이곳을 기억했으면,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