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걸음기자단 History

서울에서 이중섭을 만나다


이중섭, 우리에겐 그림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이중섭의 탄생 100


, 그리고 작고 6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로써 전국 곳곳에서 이중섭과 관련된 많은 전시회가 열렸고, 열릴 것이


라고 해요. 저도 그의 삶과 그의 작품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이중섭, 백 년의 신화>라는 이름으로 덕수궁 국립 현


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전시가 10 3일까지 열렸기 때문에 제가 방문했을 때는 마감이 얼마 남은 전시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전시는 시간 순서대로의 모두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이제부터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요!



1 전시관 : 1916 - 1953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온 해방을 맞았고, 뒤이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제주도, 부산 등지에서 피란생활을 하였습니다. 1관에서는 시기의 이중섭이 그렸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1관에서는 특히 이중섭이 부인 마사코와의 연애시절에 그렸던 엽서화로 벽면을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어느 하나 겹치는 그림이 없는 엽서들을 보면서 이중섭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사랑 가득한 마음을 엿볼 있었기에 마음도 절로 따뜻해짐을 느낄 있었습니다.

 

2 전시관 : 1954

2관에서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인 은지화 유명한 그림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은지화는 담배를 싸는 종이 위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위에 물감을 바른 닦아낸 그림을 말하는데요, 마치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보는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당시 이중섭은 은지를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찾으러 다녔다고 해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생각해 있었습니다.

줄곧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그림들을 보며 그림임에도 불고하고 엄청나게 역동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알고 보니 이중섭은 소를 통해 자신의 모습, 그리고 힘든 시기를 겪어낸 한국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그림이 더욱 패기 넘치게 보이더라구요. 시기에 이중섭은 통영에서 지내면서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도 그림에 담았는데요, 이중섭의 풍경화는 처음 보았지만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가 인상 깊었습니다.

 

3 전시관 : 1954 - 1955

이중섭의 편지화로 가득 채워진 전시관이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당시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의 내용과, 그림을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수많은 편지들을 보며 이중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있었는데요. 먼저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마다 항상 일본에 돌아가면 태현이, 태성이( 아들 이름)에게 자전거를 사줄게요.라는 말을 썼었는데 그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고, 얼마나 좋은 아빠였는지 있었습니다. 또한 편지 장으로 싸우는 아들을 위해 똑같은 그림을 장씩 항상 그려 편지를 써주었던 모습을 보아 마음이 예쁜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는 항상 편지 끝에 가족들에게 답장 써줘요. 하는 부탁을 하였는데, 그가 얼마나 가족들을 그리워했는지도 엿볼 있었습니다.

 

4 전시관 : 1955-1956

이중섭은 종종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에 개인전을 열어서 돈으로 하루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라는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2번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수금이 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는 좌절하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당시 자화상을 보았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공허해보이고 허전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가족을 그리워하던 그는 마흔 살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서 무연고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안은 모르고 살고 있었던 화가 이중섭그리고 인간 이중섭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시된 작품 수가 적지 않았기에 그의 알려진 그림들뿐만 아니라 외의 다른 그림들까지 모두 있어서 더욱 깊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