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실2.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세번째 이야기

 

 

 

 

오늘은 상설전시실 2의 마지막 소개입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전시 내용을 소개해드리려고 마음먹었는데..

요즘에는 밀려드는 업무 때문에(!)...  

비겁한 변명이었죠?  

죄송합니다(ㅠ_ㅠ)(_ _)(ㅜ_ㅜ)  

 

상설전시실2의 세번째 중주제,  '근대 국가 토대 구축' 의 전시 내용 안내해 드릴게요~

 

 

먼저 전시 내용 요약부터!!

 

 

 

 6.25 전쟁 이후는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오늘날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가 구축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정부는 해외 원조를 기반으로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의무 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였다. 또한 부정과 부패에 맞서 시민과 학생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은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하기도 전에  

5.16 군사정변으로 막을 내렸다. 

 

 


6.25 전쟁 이후 한국과 미국은 상호 방위 조약을 맺어 긴급한 안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군 2개 사단이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 배치해  

북한의 재 남침을 억제하고, 전쟁 발발시에 미국이 자동 개입을 할 수 밖에 만든 것이죠.(oh~ smart!)

더불어 한국 군도 증강되었고, 장교 훈련·교육 프로그램도 강화되었습니다.  

 

 

사진 속 유리 전시장 안에 전시된 지도가 보이시나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공포한 평화선 지도인데요,

평화선은 한국과 주변 국가 간의 수역을 구분하고,  자원 및 주권 보호를 위한 경계선으로

1905년 일제가 시마네 현 고시로 무단 편입한 독도를 한국 영토로 공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사상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도이니,  

박물관에서 꼭!! 확인 부탁드려요!! 

 

 

 

국방 뿐 아니라  

원조 의존에서 벗어나서 경제 부흥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최초의 체계적인 개발 계획인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철도, 도로, 항만, 통신, 발전소 등이 복구되었고,

정부는 시멘트, 판 유리, 비료를 '3대 기간산업'으로 지정하고 중점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소비재 공업으로서는 면방직, 제분, 제당의 '3백(三白)산업'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어서..  

 

국내 생산 첫 자동차를 소개합니다. 짜짠~  




시발자동차

 

네 맞아요~ 발음이 무척 조심스럽지요? 

알고보면 시작을 알리는 의미의, 시발(始發)입니다. 

 

    

6.25전쟁 후에 부서진 자동차의 부품을 활용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재생업이 활발했는데요!

이 시발자동차는 드럼통 철판을 펴고 두드려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진 군용 지프 모양을 띄게 되었다고 합니다~ 

1955년 10월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국산품으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았고,  

택시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시발 택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대한민국은 힘든 나라 여건 속에서도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인적 자본이야말로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기억하시나요? 좁은 교실에100명에 가까운 학생이 수업했던 초등학교 '콩나물 교실' 을...

이렇게 부족한 교육시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열은 식을 줄 몰랐고 

1950년대 말, 초등학교 취학률이 96%에 달했으며, 문맹률도 20%대로 떨어졌습니다.  

 


최초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 - 바둑이와 철수(1948)

1948년 정부수립 후 문교부가 최초로 발행해 학교에 공급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현재 중장년층에 익숙한 철수, 영희, 바둑이가 나오는 최초의 교과서이다. '가갸거겨'식으로 글자만 학습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식으로 소리, 글자, 단어, 문장을 동시에 가르치는 방식을 도입해 다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교과서로 평가받았다. 이 교과서가 발행된 날인 10월 5일은 2006년에 '교과서의 날'로 지정되었다.

 

 

 

6.25 전쟁 후,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방의 기초를 확립하고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사오입 개헌, 진보당 사건 ,경향신문 폐간 등과 같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마산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난 데 이어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180여 명이 숨지는 유혈 참사가 벌여졌습니다.  

국민이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준엄하게 심판한 4.19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18세의 나이로 4.19혁명에 참가했던 여고생이 혁명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장입니다~  

소중한 자료를 이재영님께서 기증해 주셨어요!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1960년 8월 대통령에 윤보선, 국무총리에 장면이 각각 선출 되면서 제2공화국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제2공화국은 독재와 장기집권의 폐해가 드러난 대통령제 대신 

 '대통령의 권한 대폭 축소'와 '국무총리의 국정 실권 행사'등을 내용으로 하는 내각책임제를 채택하였습니다.  

그 후 성립한 민주당 정부의 제2공화국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크게 신장하셨으나,  

언론노조운동을 비롯하여 학생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으로  

그간 억눌렸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어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1950년대에 대폭 팽창한 군의 일부 장교들은 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다  

5.16군사정변을 일으켜 합헌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군사정변 세력은 국회와 모든 정당을 해산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여 실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물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건물로 사용되었지요...

군사정변 세력은 대통령중심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통과토록 하였고,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제3공화국이 출범하였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기초가 확립되는  

1945년 부터 1960년까지의 사건과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이  

바로 상설전시실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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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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